21세기 성서읽기/『시대의 언어로 읽는 예수의 비유』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 비유 - 새로운 대안세상,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희년행동 2022. 7. 11. 21:38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 비유

새로운 대안세상,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마가복음 2:21-22

 

읽기

 

아무도 생베 조각들을 낡은 옷 위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낡은 옷에 대고 기운 생베 조각이 그 낡은 옷을 당겨서 아주 못쓰게 찢어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들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포도주가 가죽부대들을 터트려서, 포도주도 가죽부대들도 못쓰게 되어 질 것이다.

오로지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들에 넣어야만 한다.

 

낱말 풀이

 

* 생베 : 아그나푸후 γνάφου, ‘부정 접두어 + 그나프토 γνάπτω 세탁하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세탁하지 않은 생베

* 새 포도주 : 오이온 네온 ονον νέον

* 낡은 가죽부대 : 에이스 아스쿠스 팔라이우스 ες σκούς παλαιούς

* 터트려서 : 흐레케이 ήξει

* 못쓰게 되어 질 것이다 : 아폴뤼타이 πόλλυται 수동태 재귀동사,

 

 

 

 

들어가는 말

 

백만 천만 국민주권혁명 촛불은 21C 국민주권정치의 밑바탕을 만들어냈다. 이 땅의 국민주권혁명 촛불은 노동계나 시민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가족, 학생, 남녀노소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범국민 주권혁명 행동이었다. 모두가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시위 다음날 광화문 거리가 깨끗했다. 그야말로 비폭력 촛불시위가 멋지게 자리를 잡았다. 촛불시위에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동원되었고 모두가 공유했다. ‘나홀로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광장에서 서로에게서 공동체 욕구를 확인하고 국민주권 형제애를 나누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민주권 촛불 자체가 무언가 더 나아지려고 하는,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국민주권혁명 밑바탕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국민주권 의지였고 용기였다.

이 땅의 백만 천만 국민주권혁명 촛불은 신명나고 기운찼다. 한마디로 백만 천만 국민주권혁명 촛불은 민주주의 힐링 촛불이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에 대한 치유였을까? 민중들의 삶의 고통이 솔직하게 표출되고 공감되기 때문이었을까? 너와 내가 모두 삶의 상처를 입었고, 똑같은 삶의 고통을 안고 있으며, 함께 분노했다. 함께 공유하는 삶의 상처와 고통과 분노를 진솔하게 드러냈다. 백만 천만 촛불은 70여년 이 땅의 뿌리 깊은 국정농단을 심판했다. 새로운 국민주권혁명 촛불정부를 탄생시켰다.

이제, 새로운 국민주권혁명 촛불은 과거의 낡고 헌것을 모두 부수어 버려야한다. 억압과 착취와 죽임의 역사 속에서 국민주권을 탄압해온 반민주 반인권 무리들의 특권기득권을 해체해야 한다. 반 생명, 반 평화, 반 공동체, 반 노동 약탈세력들이 사익을 추구하는 거대 사회기계구조를 끝장내야 한다. 독점재벌독점자본독점관료 기득권 지배체제 내부자들의 음모와 술수들을 깨트리고 부수어 트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주권혁명 촛불승리 이후, 우리사회는 여전히 독점재벌독점자본독점관료 기득권 지배체제의 사악한 음모와 술수에 휩쓸려 놀아나고 있다. 이들의 음모와 술수에 휩쓸려 우리시대의 을 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넓어지며, 깊어지고 있다. 우리시대의 을 들 사이의 무분별하고 줏대 없는 증오심이 마구마구 퍼져 나가고 있다. 백만 천만 국민주권혁명 승리의 히스테리인가? 우리사회 을들의 무지, 을들의 사회맹(社會盲) 때문인가? 아니다, 과거의 낡고 헐고 탐욕뿐인 독점재벌독점자본독점관료 기득권 지배체제의 사악한 음모와 술수들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독점재벌독점자본독점관료 기득권 지배체제의 검은 커넥션들이 국가통계자료를 왜곡하여 재벌개혁, 노동개혁, 부동산개혁 등, 새로운 사회경제공동체 건설을 훼방하려고 끊임없이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예수의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 비유를 통하여 백만 천만 국민주권혁명 촛불승리의 갈 길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이 땅의 국민주권혁명 촛불승리가 과거의 낡고 헐고 탐욕뿐인 독점자본 지배체제의 음모와 술수를 물리치고 새로운 대안세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고대한다. 이제야말로 새 것, 꾸미지 않은 날것, 새로운 세상, 하나님과 사람이 더불어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예수의 하나님나라로 가자!

 

이끄는 말

 

본문비유는 사람들의 삶의 마당에서의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생활비유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어 기울 경우 기운부분 가장자리가 금방 찢어지는 경험들을 해봤을 것이다. 물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들에 넣어두는 상황이 우리에겐 낯선 일이도 하다. 또 한편 본문비유는 너무도 다른 사물들과 상황들을 서로 맞대어 비교하는 것에 비추어 상징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비유들 안에서 서로 맞비교하는 상징물들, ‘새 천조각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들은 어떤 상징의미들을 가지고 있을까? 나아가 예수는 본문비유의 이러한 상징 사물들과 상황들을 통하여 청중과 독자들에게 어떤 은유들을 전달하려고 했을까?

이와 관련하여 새 천 조각 또는 생베조각과 새 포도주가 갖는 상징의미는 새롭다’, ‘강하다라는 것이다. 또한 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들은 헐었다’, ‘약하다라는 상징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본문비유들 안에서 서로 맞비교 되는 상징물과 상징의미들은 서로 어울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적대적이다. 실제로, 낡은 옷에 대고 꿰맨 새 천 조각이 그 낡은 옷을 당겨서 아주 못쓰게 찢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새 천 조각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문구에 사용된 아그나후’(agnaphou ἀγνάφου)라는 낱말은 부정 접두어 아(a) + 그나프토(gnapto γνάπτω) 세탁하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한마디로 이 헬라어 문구는 옷감으로 만들어 한 번도 빨지 않은 생베조각을 말한다. 실제로, 생 베 옷은 오래 입으면서 여러 번 빨아 부드럽게 되어야 몸에 감기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 포도주 역시 오래두어 완전히 발효가 되어야 감칠맛이 난다. 아직 발효가 끝나지 않은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낡은 가죽부대를 터트려서 못쓰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면 새 포도주도 낡은 가죽부대들도 모두 못쓰게 되고 만다.

예수는 본문비유의 이러한 상징의미들을 통하여, 자신이 증언하는 하나님나라가 아주 새롭고 혁명적이며 강력한 민중의 나라라는 사실을 선언한다.

이미 때가 채워졌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소! 여러분! 회개하시오. 여러분! 복음을 신앙하시오.”

이점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전쟁과 폭력과 죽임의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전혀 다른, 도저히 마주 설 수 없는 생명평화세상이다.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하여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와 비교할 수 없는 혁신적이고 위력적이며 강력한 하나님의 통치세계이다.

이 하나님의 통치세계는 새롭고 강력하며 혁명적이다. 낡고 헐어서 곧 무너져 내려야만 하는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착취 사회구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나라이다. 전쟁과 죽임과 피흘림의 로마제국 지배체제 안에는 생명평화 하나님나라가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도리어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착취 사회구조 속에서 진구렁에 빠져 허덕이는 민중들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로마제국 지배체제에서 탈출을 해야만 한다. 로마제국 지배체제 속에서 안주해왔던 노예적 삶의 자리와 삶의 태도를 깨부수고 스스로 돌이켜 예수의 하나님나라를 향해 달음박질 해 나와야 한다.

이러할 때, 본문비유의 청중들과 독자들이 한순간이라도 빨리 벗어던져야 할 반 신앙, 반 인간 올무는 무엇일까? 먼저, 로마제국 지배체제에서 기생하며 죄와 벌로 민중을 옭아 매온 예수살렘 성전제사종교 낡은 가짜신앙을 벗어던져야 한다. 또한, 전쟁과 죽임과 피흘림의 로마제국 지배체제 내부자들만을 위한 사이비 평화안보와 그에 따르는 사회억압 질서에 저항해야 한다. 나아가, 전쟁과 죽임과 피흘림의 로마제국 지배체제 안에서 누리는 노예적 삶의 평온과 얽매임을 거부해야한다. 로마제국 황제숭배와 돈과 전쟁과 죽임의 권력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드는 제국주의 우상을 깨부수어야 한다.

반대로 본문비유의 청중과 독자들이 신앙해야 할 참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이다. 본문비유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새 것, 꾸미지 않은 날 것, 난 대로의 세상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한 생명공동체로 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오랜 세월 지중해세계의 온갖 피흘림과 죽임과 전쟁으로 낡아져 온 로마제국 지배체제와는 정반대로 어긋날 수밖에 없다. 부딪히고 저항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전쟁과 죽임과 피흘림의 로마제국 지배체제를 만나 그 낡은 지배체제를 찢어 못쓰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하며 특권기득권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산산이 부수어 트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러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밑바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의 하나님나라가 새것, 꾸미지 않은 날것,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지중해 세계의 오랜 피흘림과 죽임과 전쟁으로 낡아온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서로 반대되는 세상이다.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피흘림과 죽임과 전쟁의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대한 생활 저항이다. 투쟁이며 혁명이다.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하며 민중들에게 근거 없는 죄와 벌이라는 반 신앙, 반 인간 올무를 뒤집어씌우고 착취해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쳐부수는 생활신앙 철퇴이다.

사실, ‘죄와 벌이라는 종교올무는 유럽 중세시대로부터 21C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 이슬람 신정사회, 여타 세력 있는 종교들의 정통 교리신앙에서 두루 쓰이는 종교권력 이데올로기였다. 그로 인한 대중들의 불안과 공포, 그 악마성에 대하여는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세계 인류종교문화사에서 모든 종교들이 하나같이 죄와 벌이라는 신정사회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대중권력을 누려 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종교 대중권력을 이용하여 직접 세속권력을 쟁취하기도 했다. 또한, 죄와 벌이라는 신정체제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지배체제의 권력과 사익에 봉사함으로써 종교사회 음모와 술수의 하수구 역할을 감당해 왔다.

따라서 본문비유는 예수의 하나님나라로마제국 지배체제, 그리고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새것과 낡은 것, 강함과 쇠약함이라는 상징의미로 맞세워 비교함으로써 본문비유의 상징은유를 한껏 부풀린다. 이점에서 사실,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인류 종교문화사에 홀연히 나타난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야훼 하나님은 이집트제국 파라오 지배체제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셨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 해방노예 공동체를 통하여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가 넘치는 대동 세상(大同世上)을 건설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의 대동 세상 꿈은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민족종교 유대교 안에서 시나브로 사라지고 말았다. 반면에 유대교 안에서는 야훼신앙에 대한 반동신앙으로 소제국주의 다윗왕조 신앙이 번성했다. 다윗왕조 신앙의 핵심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였다. 다윗왕조가 망한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주의를 표상하는 시온신앙이 세력을 키웠다. 이스라엘 민족주의 시온신앙을 자양분으로 메시야신앙도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예수시대에 이르러 메시아 신앙은 정치적 메시아신앙과 묵시적이고 우주 종말적인 메시아신앙으로 갈라졌다. 유대 대중들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영웅적 메시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정치적 메시아신앙을 믿고 받아들였다. 또한 더불어서 하늘로부터 로마제국을 심판하고 새 시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우주 종말적인 메시아신앙을 함께 우러르고 받들었다.

그렇다고 유대 대중들 사이에서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야훼신앙 맥이 아주 끊긴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다윗왕조 신앙이 크게 세력을 떨칠 때에도, 야훼신앙은 민중 예언자신앙을 통하여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이어져 내려왔다. 이 예언자 신앙을 자양분으로 남은 자 신앙이 잉태되었다. 남은 자 신앙은 고난 받는 야훼의 종 신앙으로 이어졌다. 고난 받는 야훼의 종 신앙은 지중해 제국주의 지배체제 안에서 고통당하는 민중들에게 위로이며 희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야훼신앙에 대한 민중들의 위대한 깨달음으로서 임마누엘신앙이 태동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일찍이 이집트제국 파라오 지배체제의 노예였던 히브리들도 고난 받는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신앙진실을 이해했다. 이어지는 인류역사의 고비마다 시대의 지배체제로부터 억압받고 착취당하며 고통당하는 시대의 수많은 민중들의 삶속에서 함께 살아오신 야훼 하나님이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신앙의 핵심인 임마누엘신앙으로부터 이 땅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찾고 선포하며 실천 행동할 수 있었다. 예수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 나약한 사람,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사람, 병든 이들, 심지어 창녀와 죄인들까지, 그들의 삶속에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했다. 예수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아빠’(abbā Ἀββᾶ)라고 부르시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예수의 아빠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실천되며 확장하는 순간 피흘림과 죽임과 전쟁을 통한 로마제국 지배체제 내부자들의 사이비 평화복음은 설자리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착취구조의 노예적 삶의 안정이라는 신기루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해서 죄와 벌이라는 신정사회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특권기득권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도 스스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더 나아가 21C 맘몬(자본)지배체제의 무한경쟁, 무한독점, 무한축적, 무한소비라는 종교사회경제신화도 빛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맺는 말

 

아무도 새 천 조각을 낡은 옷 위 헤진 곳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낡은 옷에다 새 천 조각을 대고 꿰맨다면, 낡은 옷에 대고 꿰맨 새 천 조각이 그 낡은 옷을 당겨서 아주 못쓰게 찢어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들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새 포도주가 낡은 가죽부대들을 터트려서, 포도주도 가죽부대들도 못쓰게 되어 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C 한국기독교 엘리트 목사들은 끊임없이 예수천당 불신지옥, 죄와 벌, 사이비 기독교 성공신화를 외쳐댄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제멋대로 오역(誤譯)하고 속이고 감추며 자신들의 맘몬자본숭배 신앙이데올로기에 접목하려고 안달이다. 물론 이러한 반동(反動)신앙 행태는 여타의 다른 종교들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구촌제국 미국의 정치판 뒷이야기에 주목한다. 특별히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크리스토 파시즘제국적 페미니즘이다. 독일의 여성신학자 도르테 죌레에 의하면, '크리스토파시즘'은 국가주의, 군사주의, 가부장주의, 노동운동 적대주의 등 파쇼 이데올로기가 기독교 복음주의와 혼합되고 수단화된 종교체제이다. 한국의 대형보수 기독교회들과 똑 닮았다.

또 한편으로 이야기 되는 것은 제국적 페미니즘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질라 아이젠스타인(Zillah Eisenstein)‘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야말로 여성 혐오와 인종차별적인 편협한 사람들과 제국적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벌어진 지옥으로부터의 선거였다라고 평가한다. 이로보아 지구촌제국 미국의 지배체제가 도발하는 피흘림과 죽임의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이, 지구촌제국 미국의 대선 판에서 벌어졌던 상황들을 살펴볼 때, 신자유주의 독점금융자본경제의 폐해로 인한 사회양극화와 불평등 세상에 대한 민중저항운동이 제국주의 파쇼정권반동현상으로 귀결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이제야 말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주부대에 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 포도주가 잘 숙성해서 맛있는 묵은 포도주를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하나님나라도 그렇다.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새것, 꾸미지 않은 날 것, 난 대로 세상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다함께 한 생명공동체로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 세상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인류역사 속에서 무한히 낡아져 온 맘몬자본세상과 어긋나고 부딪치며 마침내 맘몬자본세상을 부수어 트리고 말 것이다. 나아가 맘몬자본을 숭배하고, 기독교 자본주의 성공신화를 널리 퍼트리며, 가난하고 나약한 이들에게 죄와 벌이라는 종교이데올로기를 통하여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종교사회적 특권기득권을 누려온 이 땅의 종교엘리트들을 몰아내게 될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새로운 국민주권역사를 써나가야 할 책임이 있는 국민주권혁명 촛불정부도 마땅히 그렇다. 국민주권혁명 촛불 스스로가 이 땅의 독점재벌독점관료 기득권 지배체제를 몰아내도록 길놀이 판을 벌여야 할 것이다. 국민주권혁명 촛불이 스스로의 미약한 국민주권을 변혁할 수 있도록 국민주권행동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맘몬자본지배체로부터 인권과 생존권, 노동과 삶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특권기득권 사회정치경제 장애물제거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국민주권혁명 촛불 스스로가 정의와 평등, 생명과 평화 공동체주권을 확립할 것이다. 스스로의 국민주권혁명 민주주의 체제를 세워 나갈 것이다. 백만 천만 국민주권혁명은 민주공화국 국민주권에 대한 무한혁신과 무한변혁의 주체로써 그 권리행동의 한계가 없다.